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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다르와 세버그의 재탄생, 링클레이터가 만든 Nouvelle Vague (누벨바그)는 왜 특별한가

by 영화 데이트 202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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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Richard Linklater)

각본 : 홀리 젠트 (Holly Gent), 빈센트 팔모 (Vincent Palmo), 미셸 할버슈타트 (Michèle Halberstadt), 라에티시아 마송 (Laetitia Masson)

출연 : 기욤 마르벡 (Guillaume Marbeck), 조이 도이치 (Zoey Deutch), 오브리 뒤랭 (Aubry Dullin)

상영시간 : 106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25년 작품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1959년 프랑스 영화사에서 혁명적 순간을 만들어낸 영화 <À bout de souffle(네 멋대로 해라)>의 탄생 과정을 재현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예술적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헌사이자, 창작의 열정이 어떻게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각적인 시도입니다.

링클레이터는 이번 작품을 통해 프랑스어로만 영화를 연출하며, 4:3 비율의 흑백 화면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연출적 선택은 단순한 형식적 재현이 아니라, 1950년대 말의 촬영 현장과 영화적 열기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관객은 마치 고다르, 세베르그, 벨몽도가 실제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며, 영화가 지닌 시간의 마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세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장 뤽 고다르 역의 기욤 마르벡, 진 세버그 역의 조이 도이치, 그리고 장 폴 벨몽도 역의 오브리 뒤랭입니다. 세 배우는 실제 인물의 이미지를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들이 지닌 불안, 욕망, 열정을 재구성해냅니다. 조이 도이치는 세버그의 청순함과 반항심을 동시에 담아내며, 기욤 마르벡은 고다르의 까칠하고도 천재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오브리 뒤랭은 벨몽도의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유머와 감성으로 녹여내며 그 시대의 상징적 인물을 완벽히 되살려냅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원래 미국의 시간 연출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나 <보이후드>처럼, 인물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보여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그것은 개인의 성장 서사가 아닌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진화로 확장됩니다.

링클레이터는 ‘누벨바그’라는 프랑스 영화운동을 단순히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이 어떻게 ‘지금의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탐구합니다. 그는 그 당시의 촬영 현장을 마치 현재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구성하면서, 카메라의 위치와 배우의 동선, 그리고 즉흥적인 대화 속에서 태동한 영화적 자유를 포착합니다.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의 촬영 중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과 창조의 순간을 따라갑니다. 제한된 예산, 급박한 일정, 비전문 배우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시각 언어의 실험이 교차하는 현장은 혼란스럽지만 그 자체로 혁명적입니다. 특히 링클레이터는 카메라를 통해 ‘창작의 현장’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이 얼마나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영감을 길어내는지를 진솔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고다르는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제약 속에서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세버그와 벨몽도는 자신들이 찍히는 화면 속 존재가 아닌,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어가죠. 세 사람의 긴장감은 곧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에너지로 폭발합니다.


링클레이터의 연출은 정교하면서도 따뜻합니다. 그는 프랑스의 예술적 감수성을 존중하면서도, 미국 감독으로서의 시각을 완벽히 조화시킵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사에 대한 헌정’이면서 동시에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선언’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촬영감독 데이비드 샴빌의 흑백 영상은 마치 1960년대의 낡은 필름을 복원한 듯한 질감으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편집자 캐서린 슈워츠의 감각적인 리듬 역시 인상적입니다. 대사 하나하나, 시선의 교차, 침묵의 순간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예술의 흐름을 완성합니다. 음악 대신 공간의 울림을 강조하는 방식도 링클레이터 특유의 미니멀한 감정선과 어우러집니다.

영화는 2025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첫 공개되었고, 11분에 달하는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습니다. 로튼토마토에서는 90%의 긍정적 평가를, 메타크리틱에서는 76점을 기록하며 “진심 어린 오마주이자 예술적 재현의 경지”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스크린데일리의 비평가 리 마셜은 “한 시대의 창조적 열기를 완벽히 재현한 노스탤지어의 정수”라고 극찬했으며, 조이 도이치는 사바나 영화제에서 브레이크스루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향수에 기대지 않은 진정성 있는 재해석이 주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관객은 마치 1959년의 파리 거리를 거닐며, 젊은 예술가들의 대화와 웃음, 갈등을 엿보는 듯한 감각을 경험합니다. 링클레이터는 이를 통해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품은 누벨바그라는 운동의 본질, 즉 ‘영화는 더 이상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의 표현일 수 있다’는 정신을 되살립니다. 이는 지금의 영화산업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 기술과 자본이 영화의 방향을 좌우하는 시대에, 링클레이터는 예술이란 여전히 작고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에서 점차 시적인 여운으로 옮겨갑니다. 세버그의 클로즈업 장면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선, 카메라 너머로 들려오는 고다르의 지시, 그리고 벨몽도의 웃음은 단순한 연기가 아닌 역사적 순간의 재창조로 느껴집니다. 관객은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다시 ‘창조하는 언어’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벨바그’는 영화예술의 기원을 다시 묻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의 창작자들에게 “예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링클레이터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아름답게 기록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단순한 회고가 아닌 ‘지속적인 대화’로 남게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누벨바그’는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재현하는 동시에,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링클레이터가 늘 추구해온 인간과 시간, 기억과 예술의 조화에 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은 한동안 1959년 파리의 공기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시대는 바뀌었지만, 영화가 사랑하는 이유는 여전히 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예술을 향한 영원한 찬사입니다. 링클레이터는 이 작품을 통해 “영화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증명하며, 관객 모두에게 그 시대의 숨결을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세대의 헌정이 아닌, 영화 예술의 본질을 향한 가장 순수한 러브레터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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