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댄 트랙텐버그 (Dan Trachtenberg)
각본 : 패트릭 아이슨 (Patrick Aison), 브라이언 더필드 (Brian Duffield)
출연 : 엘르 패닝 (Elle Fanning), 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 (Dimitrius Schuster-Koloamatangi)
상영시간 : 107분
영화 ‘프레데터: 배드랜즈’는

2025년 11월에 개봉한 미국 SF 액션 영화로, 프레데터 시리즈의 여섯 번째 실사 영화이자 전체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프레이(Prey, 2022)’를 통해 시리즈를 새롭게 되살린 댄 트랙텐버그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으며, 이번에는 기존의 인간 중심 시점을 벗어나 프레데터 종족의 내면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세계를 탐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이전 시리즈들이 지구에서 인간과 프레데터의 대결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이번 작품은 프레데터의 고향 행성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인간이 아니라 프레데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프랜차이즈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흥미를 동시에 안겨줍니다.
이야기는 젊은 프레데터 ‘덱(Dek)’이 자신의 부족에서 ‘왜소하고 약한 존재’로 낙인찍혀 추방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강자의 혈통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형 인조체 ‘티아(Thia)’와 뜻밖의 동맹을 맺게 되고, 함께 절대적인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사냥과 전투의 장면으로만 구성되지 않습니다. 트랙텐버그 감독은 ‘약함 속의 존엄’이라는 주제를 통해 프레데터라는 존재를 다시 정의하려고 시도합니다. 덱은 전통적인 ‘사냥꾼’의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지만,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과 윤리를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전례 없는 설정으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프레데터를 만들어냅니다.
엘르 패닝은 이번 작품에서 이중 역할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먼저 손상된 웨일랜드-유타니사의 합성인간 ‘티아’로 등장하며, 덱과 함께 생존의 여정을 걷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인조체 ‘테사’로서 티아의 적대적 복제체를 연기합니다. 이 두 인물은 인간성의 상실과 회복, 그리고 인공 지능의 정체성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영화의 중심적인 사유를 끌어냅니다.
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는 덱 역할을 맡아 강렬한 육체적 연기와 섬세한 감정 표현을 선보입니다. 그는 실제로 프레데터 언어를 배우며 모션 캡처 연기를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덱이라는 캐릭터는 전통적인 괴수형 존재가 아니라 감정의 깊이를 지닌 생명체로 재탄생합니다. 그의 눈빛과 움직임만으로도 내면의 분노, 고독, 그리고 성장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프레데터의 세계관 확장’입니다. 영화는 처음으로 프레데터의 고향 ‘야우트자 프라임(Yautja Prime)’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거대한 황야와 절벽, 이국적인 식생과 사냥 문화가 어우러진 이 행성은 일종의 ‘프레데터 문명’을 드러내는 무대가 됩니다. 그들의 사회는 명예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약자를 배척하는 냉혹한 규율로 운영됩니다. 감독은 이러한 구조를 통해 인간 사회의 폭력적 서열 구조를 은유적으로 비추며,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철학에 질문을 던집니다.
촬영감독 제프 커터는 뉴질랜드에서 진행된 현장 촬영을 통해 이 이질적이면서도 장엄한 환경을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거친 황토빛 대지, 이끼 낀 암벽, 거대한 생명체의 흔적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일종의 ‘우주적 서부극’을 연상시킵니다. 관객은 그 세계 속에서 길을 잃은 존재들의 외로움과 본능의 충돌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음악은 사라 샤크너와 벤저민 월피시가 공동으로 작곡했습니다. 두 사람은 전작 ‘프레이’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으며, 이번에도 전자음과 원시 타악 리듬을 절묘하게 결합해 ‘고대의 미래’를 연상시키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냈습니다. 음악은 장면마다 묵직한 울림을 더하며, 덱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작동합니다.

이 영화의 연출 방향은 명백히 ‘서부극’의 미학을 차용합니다. 감독은 ‘셰인(Shane, 1953)’이나 ‘매드맥스 2(Mad Max 2, 1981)’ 같은 고전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 덱은 ‘이방인 영웅’의 전형을 따릅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추방당하지만, 그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로 다시 돌아오는 운명을 지닙니다. 이 점에서 ‘프레데터: 배드랜즈’는 장르의 규칙을 새롭게 해석한 우화이기도 합니다.
시각효과 또한 눈부십니다. 웨타 FX와 ILM이 참여한 시각효과는 프레데터 종족의 생리적 디테일과 새로운 생명체의 디자인을 사실적으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덱의 얼굴은 실사 슈트 위에 디지털 모션 캡처를 결합한 형태로 제작되어, 감정 표현의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정교하게 드러납니다. 덕분에 관객은 괴수의 외피 너머에 존재하는 한 생명의 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단순히 ‘프레데터의 주인공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감독은 인간이 만들어낸 폭력의 구조를 ‘사냥꾼의 시선’으로 역전시킵니다. 덱과 티아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둘 다 소속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영화는 그들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과 생존의 경계’를 탐구하며, 결국 무엇이 인간성을 구성하는가를 질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작품이 프랜차이즈 최초로 PG-13 등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잔혹한 폭력보다는 감정과 철학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시리즈의 새로운 세대 관객층에게도 접근성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직접적 표현이 줄어든 대신, 심리적 긴장감과 상징적인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사냥 장면의 음향과 조명 연출, 그리고 순간적인 절제된 폭발은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시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프레데터: 배드랜즈’는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성장과 정체성의 서사로 읽힙니다. 덱은 자신을 괴물이라 부르는 세계 속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을 합니다. 티아 또한 결함이 있는 기계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자유의지를 인식하는 존재로 성장합니다. 결국 두 존재의 여정은 서로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붉은 황야 위에서

덱이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마치 고대 신화 속 영웅의 귀환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자신을 추방한 세계를 향해 복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며, 그 순간에 진정한 사냥꾼으로 거듭납니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가 지향해온 ‘존재의 진화’라는 주제를 완성하는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단의 반응 역시 긍정적입니다. 로튼토마토 지수 89%, 메타크리틱 69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내에서 가장 높은 평가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장르적 익숙함 속에서도 철학적 깊이를 획득한 드문 프랜차이즈 영화”라며 호평했습니다. 특히 엘르 패닝의 연기와 덱의 서정적인 캐릭터 묘사, 그리고 프레데터 언어의 실제 구현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프레데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괴물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적 실험’입니다.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자신이 사냥꾼인지, 아니면 사냥감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결국 ‘프레데터: 배드랜즈’는 폭력의 본능을 탐구하면서도 인간성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덱과 티아의 관계는 이방인과 이방인이 서로의 고독을 치유하는 서정시처럼 다가오며, SF와 신화, 액션과 사유가 완벽히 조화된 한 편의 서사시를 완성합니다.
프레데터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이번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의 확장과 감정의 깊이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도, ‘프레데터: 배드랜즈’는 충분히 독립된 완성도를 지닌 영화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음속에 남는 것은 단순한 액션의 여운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강함이란 무엇이며, 약함 속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사냥꾼이란 타인을 쓰러뜨리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자라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프레데터’ 시리즈의 새로운 전환점이며, 그 세계를 다시 정의한 야심찬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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