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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시간 44분의 신화, ‘바후발리: 더 에픽 (Baahubali: The Epic)’에서 발견한 인간의 본질

by 영화 데이트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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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S. S. 라자몰리

각본: V. 비자이엔다라 프라사드, S. S. 라자몰리

출연: 프라바스, 라나 다그바티, 아누쉬카 셰티, 타만나 바티아, 라미야 크리슈난, 나사르, 사티야라즈, 수바라주, 아디비 세시

상영시간: 225분


2025년 10월, 인도 영화계는 다시 한번 거대한 전설을 불러냈습니다. 바로 S. S. 라자몰리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대표작 ‘바후발리’ 2부작을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한 **‘바후발리: 더 에픽(Baahubali: The Epic)’**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재편집본이 아닙니다. 오히려 라자몰리 감독이 10주년을 기념하며 다시금 ‘바후발리’의 서사를 재창조한, 일종의 ‘리마스터 서사시’에 가깝습니다. 기존 두 편의 영화, 즉 ‘더 비기닝(2015)’과 ‘더 컨클루전(2017)’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엮어내며, 여기에 미공개 장면과 새로운 사운드, 강화된 영상미를 더해 마치 새로운 작품처럼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 225분, 즉 3시간 45분이라는 방대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며, 현대 인도 영화 중에서도 가장 긴 상영시간을 가진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긴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라자몰리의 연출력은 이 시간을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듭니다. 오히려 서사의 밀도와 시각적 완성도가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후발리: 더 에픽’은 대서사적 영웅담의 완결판이라 부를 만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한 왕국의 몰락과 부흥, 그리고 한 인간이 신화적 존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란 청년 시부두(마헨드라 바후발리)가 자신이 잃어버린 왕국의 후계자임을 깨닫고 폭군 발랄라데바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신념, 그리고 정의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적 여정으로 그려집니다.

라자몰리 감독의 연출은 여전히 강렬하고, 그만의 장대한 시각적 상상력이 스크린을 압도합니다. 특히 ‘바후발리: 더 에픽’은 기존의 두 편에서 느껴졌던 서사의 간극을 매끄럽게 이어주며, 보다 유려한 내러티브 흐름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더 비기닝’의 시부두가 정체를 깨닫는 순간과 ‘더 컨클루전’에서 카타파가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 사이의 전환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마치 한 편의 완전한 신화적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신화와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적 장치입니다. 라자몰리는 전통적인 인도 서사시의 요소—왕국, 신성한 운명, 배신, 복수, 그리고 구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합니다. 아마렌드라 바후발리(프라바스)는 신의 축복을 받은 전사이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왕좌보다 백성을 중시하고, 권력보다 정의를 선택하는 인간적인 영웅으로서 신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발랄라데바(라나 다그바티)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상징합니다. 그의 폭정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영화의 서사는 전통적인 선악 구도의 단순함을 넘어서, 각 인물의 내면적 동기와 갈등을 세밀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시바가 진실을 깨닫고 자신이 바로 ‘바후발리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순간은 이 작품 전체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단순한 신분의 발견이 아닌, 운명에 대한 각성의 순간을 목도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 역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시바가 사랑하게 되는 아반티카(타만나 바티아)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스스로 혁명을 꿈꾸는 전사입니다. 그녀의 등장은 시바가 인간적 사랑을 통해 더 큰 사명을 깨닫는 계기가 되며, 그 사랑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투쟁의 불꽃으로 전환됩니다. 데바세나(아누쉬카 셰티)는 왕국의 정의와 명예를 상징하는 인물로,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의 복수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닌 정의의 구현으로 그려집니다. 시바가 발랄라데바를 불의의 상징으로 보며 싸운다면, 데바세나는 그 불의를 불태워 없애는 불의 화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자몰리 감독의 연출력은 공간의 활용에서도 돋보입니다. 마히슈마티 왕국의 거대한 성곽, 폭포와 산맥이 어우러진 자연 풍경, 수천 명의 병사들이 맞붙는 전투 장면은 인도 신화의 한 장면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장엄함을 자랑합니다. 특히 이번 리마스터 버전에서는 시각적 질감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HDR 색 보정과 4K 업스케일링 덕분에 화면의 깊이감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해졌으며, 이전보다 훨씬 세밀한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운드 역시 새롭게 녹음되었습니다. 작곡가 M. M. 키라바니의 음악은 영화의 영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투 장면에서 웅장한 타악 리듬이 폭발하듯이 울려 퍼지고, 감정적인 순간에는 현악기와 합창이 서사의 무게를 더합니다. 이번 ‘더 에픽’ 버전에서는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재편집되어, 관객은 극장에서 마치 신화 속 전쟁터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됩니다.

연기 면에서도 프라바스의 존재감은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그는 아마렌드라와 마헨드라, 두 인물을 각각 다른 기운으로 연기하면서도 동일한 혈통의 카리스마를 유지합니다. 젊은 전사로서의 열정과, 왕으로서의 품격을 동시에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인도 영화의 남성 영웅상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라나 다그바티의 발랄라데바는 냉철하고 폭력적인 카리스마로 대비를 이루며, 두 배우의 대결 장면은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미야 크리슈난이 연기한 시바가미 데비는 ‘바후발리’ 세계관의 심장입니다. 그녀는 정의와 모성, 권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군주의 상징으로, 인도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남을 것입니다. 나사르가 연기한 비잘라데바는 인간의 질투와 탐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며, 사티야라즈의 카타파는 충성과 죄책감이라는 복잡한 내면을 품은 인물로 그려집니다.

‘바후발리: 더 에픽’은 단순히 액션이나 시각 효과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서사의 도덕적 깊이’에 있습니다. 영화는 영웅의 탄생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왕이란 누구인가?’, ‘정의는 힘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희생에서 오는가?’ 라자몰리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해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시각적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각자가 스스로의 답을 찾도록 이끕니다.

특히 결말부에서 마헨드라가 폭군을 불태우고 왕좌에 오르는 장면은 단순한 복수의 완결이 아니라, 정의의 계승을 의미합니다. 그의 즉위식은 한 왕의 복권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탄생으로 묘사됩니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라는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바후발리: 더 에픽’은 단순히 한 시대의 영화가 아닙니다. 인도 영화 산업의 자부심이자, 세계 영화사에 남을 신화적 걸작입니다. 라자몰리 감독은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 깊이를 모두 갖춘 영화를 만들어냈으며, 이를 통해 인도 서사시의 전통을 현대적 미학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신화와 현실, 인간과 신성을 잇는 다리와도 같습니다.

결국 ‘바후발리: 더 에픽’은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거대한 상상력을 품을 수 있는가를 증명한 작품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볼거리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서사시이며,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열정을 동시에 담아낸 대작입니다. 이 작품을 감상한 후, 관객은 단순히 한 영웅의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귀한 이상과 정의의 불멸함을 목격한 듯한 감동을 얻게 됩니다.

바후발리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영화 속 이야기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의지와 신념에 대한 영원한 비유로 남습니다. ‘바후발리: 더 에픽’은 바로 그 불멸의 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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