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데이비드 매켄지 (David Mackenzie)
각본: 저스틴 피아세키 (Justin Piasecki)
출연: 리즈 아메드 (Riz Ahmed), 릴리 제임스 (Lily James), 매튜 메허 (Matthew Maher), 에이사 데이비스 (Eisa Davis), 샘 워싱턴 (Sam Worthington)
상영 시간: 112분

“이곳은 트라이 스테이트 릴레이 서비스입니다.”
릴레이 서비스(relay service)란 청각 장애인이나 발화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통신 프로그램입니다. 이 서비스는 그들이 전화를 받고 걸 수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개별적인 장치가 가정이나 사무실에 설치될 수 있으며, 작은 키보드와 아날로그 디스플레이를 통해 두 사람 간의 대화가 문자로 표시됩니다.
만약 릴레이 사용자가 청인(hearing person)이나 발화가 가능한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면, 중간에서 ‘옛날 교환원(operator)’처럼 역할을 해주는 중계자가 대신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직접 음성으로 전달하며, 상대방의 응답을 다시 문자로 입력해 원래 사용자에게 “전달(relay)”합니다.
21세기의 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시대에서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문자 전화(text telephone)는 이미 1964년에 발명되었고, 최초의 릴레이 서비스는 1970년대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20세기의 혁신 기술은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2016년작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연출)의 신작 《릴레이》에서 거대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바로 이 기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첫 번째 막에서, 세라 그랜트(릴리 제임스 분)는 젊고 똑똑한 임원으로, 한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그녀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자신이 회사 문서를 훔쳤다고 고백합니다. 그 문서에는 회사의 유전자 조작 식품이 사람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처음에는 세라를 내부 고발자(whistleblower)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곤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며, 단지 그 문서를 돌려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문서를 돌려주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요?
그 변호사는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그게 핵심이죠.”
그 사람이 바로 애쉬(리즈 아메드 분)입니다. 애쉬는 극도로 은밀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해결사(fixer)입니다. 정교한 계획과 첩보 수준의 장치를 통해, 그는 세라 같은 사람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두 당사자가 안전하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리즈 아메드는 청력을 잃는 록 드러머를 연기한 깊은 울림의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2019)에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릴레이》에서의 애쉬는 청각 장애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자주 릴레이 장치와 서비스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그의 청력이나 발화 능력에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 평론가가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애쉬는 매켄지 감독의 영화 속 약 28분이 흐르기 전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첫 번째 의뢰인 호프만(매튜 메허 분)과 함께 등장하여, 제약 회사 CEO(빅터 가버 분)에게 문서를 반환한 뒤 안전하게 도주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애쉬는 호프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반환된 회사 문서의 사본을 비밀 금고에 따로 보관하기도 합니다.
“만약 제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애쉬(Ash)는 영화 초반 약 30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주인공의 세심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는 마치 사립 탐정처럼 홀로 움직이지만, 스파이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겉으로는 냉정하고 자동 조종 장치처럼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사이보그 같은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여러 판의 체스를 동시에 두고 있는 듯 치밀하게 상황을 계산합니다.
애쉬는 고객과의 소통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릴레이 서비스(Relay Service) 를 주된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그는 민감한 협상과 고위험 상황에서 이 방법을 통해 안전하게 익명성을 유지하며, 영화 전반에 걸쳐 이 서비스는 애쉬와 그의 고객, 그리고 이해관계자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 장면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에서 그의 관심과 활동은 오직 사라(Sarah)에게 집중됩니다. 사라는 절실히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애쉬는 사라와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녀의 이전 직장인 바이오테크 기업의 세 명의 대표들과도 대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슨(Dawson, 샘 워싱턴 분)과 그의 두 동료는 전통적인 화이트칼라 임원이나 부유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단순히 고용된 해결사, 즉 사라가 훔친 귀중한 연구 자료를 되찾기 위해 투입된 ‘힘’일 뿐입니다. 도슨의 머릿속에는 ‘사라를 위협하거나 심지어 해치는 것조차 도시의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은 도슨을 과장되거나 만화적인 악당으로 연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치밀하고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처음부터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듯한 불안한 기운을 풍깁니다. 도슨과 그의 부하들은 애쉬와 사라를 멀리서 압박하며, 서로 간의 긴장감은 계속 고조됩니다.
사라는 매력적이면서도 순진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애쉬는 그녀의 온라인 사진을 보며, 또한 대화를 통해 그녀를 점차 위험에 빠진 여성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녀는 단순히 그의 고객이 아니라 애쉬의 마음을 자극하는 존재로 자리잡습니다.

저스틴 피아세키(Justin Piasecki)의 각본은 애쉬의 취약한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두 번의 비밀스러운 모임 장면과 또 한 번의 지역 펍 장면을 배치합니다. 애쉬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외로운 사람으로, 이 소규모 집단 속에서만 유일하게 인간적인 연결을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라와 감정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순간, 관객은 그 상황을 완전히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릴레이”는 배경인 뉴욕(New York City) 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도시의 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로 붐비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고급 사무실 옆에는 어두운 무드의 스피크이지 바,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아시아 음식점, 붐비는 편의점이 공존합니다.
애쉬는 일상에서는 얼굴 없는 존재로 남고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람과 콘크리트의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도시의 무리에 섞여 익명성을 확보합니다.
데이비드 맥켄지 감독과 촬영감독 자일스 너트겐스(Giles Nuttgens)는 실제 뉴욕 로케이션을 통해 도시를 하나의 또 다른 인물처럼 활용하며, 길거리의 무작위 인물들이 애쉬, 사라, 혹은 호프먼(Hoffman)을 향해 시선을 보내거나 접근하는 순간을 위협으로 묘사합니다. 이 연출은 관객의 불안을 증폭시키며, 언제 어디서든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이렇듯 관객은 사라와 애쉬의 안전을 끊임없이 걱정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애쉬는 경험 많은 인물이지만, 사라와의 관계가 감정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서 이번 임무는 그에게 더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으로 변모합니다. 이 점이 바로 “릴레이”를 지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만드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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