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범죄, 스릴러
상영 시간: 133분
감독: 스파이크 리 (Spike Lee)
각본: 앨런 폭스 (Alan Fox)

출연 배우
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 – 데이비드 킹 (David King) 역
제프리 라이트 (Jeffrey Wright) – 폴 크리스토퍼 (Paul Christopher) 역
일페네시 헤이더라 (Ilfenesh Hadera) – 팸 킹 (Pam King) 역
A$AP 록키 (A$AP Rocky) – 영 펠론 (Yung Felon) 역
마이클 포츠 (Michael Potts) – 패트릭 베세아 (Patrick Bethea) 역
아이스 스파이스 (Ice Spice) – 본인 역 (영화 데뷔)

“모든 돈이 다 좋은 돈은 아니다.” - ‘Highest 2 Lowest’의 데이비드 킹
Highest 2 Lowest는 랩과 힙합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음악 거물 데이비드 킹(덴젤 워싱턴 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느 날 그는 가까운 사람이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바로 당국에 연락해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킹은 음악 업계에서 자신이 쌓아온 자존심과 소속감, 그리고 부와 특권 속에서 살아온 삶의 대가와 마주하게 됩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하고 앨런 폭스(Alan Fox)가 각본을 맡은 Highest 2 Lowest는 에번 헌터(Evan Hunter)의 1959년 소설 King’s Ransom: An 87th Precinct Mystery를 원작으로 하며, 아키라 구로사와(黒澤明, Akira Kurosawa)의 1963년 영화 천국과 지옥(High and Low)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명작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큰 도전이지만, 저는 고전의 리메이크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주제를 담고 있으며,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작 소설은 뉴욕을 배경으로 했고,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이야기를 일본 사회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스파이크 리는 Highest 2 Lowest에서 다시 뉴욕을 무대로 삼으며, 소설과 영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섞어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감독이 10여 년 만에 자신의 고향인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이번에는 도시의 부유한 측면을 탐구합니다.
영화의 톤, 기복의 문제
저는 Highest 2 Lowest를 천국과 지옥과 비교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상 리의 해석이 너무 창백한 모방처럼 느껴져 비교를 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범죄 드라마로 보일 수도 있지만, 133분이 지나면서 이 리메이크가 독자적으로 설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리메이크라면 독립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리 감독이 2013년작 올드보이 리메이크에서 비슷한 평가를 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 같은 작품, 즉 아이가 몸값을 위해 납치당하는 이야기는 이미 긴장과 서스펜스를 위한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 감독의 연출은 마치 코미디처럼 그려져, 상황의 심각성이 전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사건 해결을 시도하긴 하지만, 진정성이 부족해 보이며, 몸값 피해자의 안위 말고는 크게 공감할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천국과 지옥에서 전후 일본 사회의 불편하고 퇴폐적인 일면, 즉 마약과 빈곤으로 물든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작품의 핵심이며,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계급적 격차를 탐구하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이런 주제는 뉴욕이라는 도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 감독의 연출에서는 그 어떤 거칠음, 스타일,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자동 조종 장치로 찍은 영화 같았습니다. 또한, 억지스럽고 민망한 코미디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작사 이름인 A24를 아파트 이름으로 쓰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한 걸까요?)

음악의 문제
영화의 톤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작곡가 하워드 드로신(Howard Drossin)의 음악입니다. 그의 음악은 영화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작품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중을 방해합니다. 단순히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음악이 쉬지 않고 계속 흐릅니다. 대화 장면마저 피아노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니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해당 오디오 채널이 끊기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음악이 달라진 후반부
드로신(Howard Drossin)은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한결 차분해집니다. 그의 음악은 영화와 훨씬 더 잘 어울리며, 무엇보다도 절제 있게 사용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랩과 힙합 음악이 더 많이 활용되는데, 이는 스파이크 리(Spike Lee)가 의도했던 분위기와 적절히 맞아떨어집니다.
다만 왜 모든 배경 음악을 랩이나 힙합 기반으로 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음악 프로듀서인데, 정작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극 중 사건과 함께 흐르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적합해 보이는 음악이 깔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패션에서 음악으로
모든 책임을 리 감독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각본을 쓴 이는 앨런 폭스(Alan Fox)입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사실 그는 원래 전미 고교 농구 선수(All-State Basketball Player) 출신으로, 대학 무대(NCAA)에서 활약할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진로를 바꿔 연극과 텔레비전 각본을 쓰게 된 인물입니다.
『Highest 2 Lowest』는 그의 첫 장편 영화 시나리오인데, 결과를 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은 분명히 갖추고 있었지만, 폭스는 서사를 엉뚱하고 불필요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서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의 직업을 원작의 여성용 구두 디자이너에서 음악 업계의 거물로 바꾼 것은 뉴욕이라는 현대적 배경과 잘 맞아떨어지는 개연성 있는 업데이트였습니다. 그러나 리와 폭스는 이 설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녹음실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으며, 관객을 확실히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머지 영화 전체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는 리와 폭스가 자신들만의 창의적인 색깔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단 한 번, 마지막에서야 했음을 보여줍니다.

덴젤 워싱턴의 어색한 캐스팅
믿기 어렵지만,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은 이번 영화에서 다소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주인공을 연기하기에 지나치게 나이가 많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는 마치 이번 납치 사건이 그저 귀찮은 일거리 정도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극 중 데이비드 킹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아들도 직접적으로 “업계 최고의 귀를 가졌지만, 동시에 가장 냉정한 심장을 지녔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생사가 걸린 사건 앞에서조차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캐릭터로서 설득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리 감독이 덴젤과 다시 호흡을 맞추고 싶어 했던 이유는 이해됩니다. 그들은 2006년 『인사이드 맨(Inside Man)』 이후 처음 함께 작업한 것이었고, 누구든 덴젤 워싱턴과 일할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톤이 혼란스러웠던 것처럼, 리와 덴젤 역시 데이비드 킹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덴젤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때때로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 습관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SNL』 패러디 같은 느낌으로까지 흘러갔습니다.
예상 밖의 호연
놀랍게도 가장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사람은 A$AP 라키(A$AP Rocky)였습니다. 그는 신인 래퍼 ‘영 펠런(Yung Felon)’ 역을 맡아 덴젤과 같은 장면에 있어도 더 시선을 끌 정도였습니다. 또한 아이스 스파이스(Ice Spice) 역시 짧은 등장임에도 의외로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관객 입장에서는 “왜 래퍼들이 덴젤 워싱턴이나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 같은 수상 경력 많은 배우들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Highest 2 Lowest』는 스파이크 리의 가장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작품 중 하나로 남을 듯합니다. 영화는 안나 리(Anna Lee)가 아드리아노 첼렌타노(Adriano Celentano)의 곡 『Prisencolinensinainciusol』을 부르는 커버로 막을 내립니다.
이 노래는 가사 자체가 전혀 의미 없는 조합으로 되어 있으며, 첼렌타노는 영어를 모르는 이들에게 미국 영어가 어떻게 들리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리가 왜 이 곡을 엔딩 크레딧에 선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첼렌타노 본인은 이 곡을 통해 랩의 장르를 창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리는 이를 힙합과 랩에 대한 일종의 성명처럼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고 어색한 인상을 남깁니다.
스파이크 리가 걸출한 영화감독임은 부정할 수 없으며, 아키라 구로사와(黒澤 明)가 영화예술에 끼친 영향 또한 그가 누구보다 존중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선배 거장들에게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리와 폭스가 이번 이야기를 각색한 방식은 원작이 지닌 깊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뻗어보다 실패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흔히 “모방은 최고의 찬사”라 말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구로사와에게 찬사를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파이크 리와 앨런 폭스는 결국 자신들만 만족시키고 관객을 지루하게 만든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